2026년 9월 4일부터 12일까지, 스무 명이 함께 중국 실크로드 인문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안에서 출발해 천수와 황하, 가욕관과 돈황, 투르판과 우루무치를 지나 다시 서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총 2500km를 이동하는 8박 9일의 여정이었습니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흔히 끝없는 사막과 낙타 행렬을 떠올리지만,실제 길 위에서는 황하의 물길과 절벽의 석굴, 거대한 성곽과 오아시스 도시,뜨거운 사막과 만년설을 품은 산맥까지 서로 다른 풍경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오래전 이 길을 건넜던 사람들과 오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도착한 첫 도시는 서안이었습니다. 실크로드 여행의 첫 답사지는 진시황 병마용.병마용갱은 완성된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지금도 발굴과 복원이 이어지는 거대한 유적 현장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 도열한 완성 구역부터 흙 속에서 발굴을 기다리는 유물,조각을 하나씩 맞춰 다시 세우는 복원 작업까지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관람을 마친 뒤에는 서안북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천수로 향했습니다. 열차에 오르며 비로소 서쪽으로 가는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천수의 맥적산 석굴을 찾았습니다. 보릿단을 쌓은 듯한 붉은 암벽 곳곳에 석굴과 불상이 자리하고, 좁은 잔도와 계단이 절벽을 따라 이어집니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과 직접 그 길을 올라 석굴을 만나는 경험은 전혀 달랐습니다. ‘동방의 미소’라 불리는 불상들을 찾아보는 것도 맥적산을 만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맥적산을 떠나 황하삼협이 있는 영정으로 이동하는 5시간 동안, 김동기 작가의 첫 버스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을 하나의 국가 안에서만 바라보기보다 유라시아와 세계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장안이 어떻게 동서 교류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함께 생각했습니다.
길이 막혀 산길로 우회하는 과정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황토고원의 장대한 풍경도 만났습니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계단식 밭과 마을은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시간을 보여주었습니다.
셋째 날은 황하의 물길을 따라 병령사 석굴로 향했습니다.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약 20분을 이동하자 황하 상류의 유가협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황토빛 강을 예상했지만 상류 댐 일대는 퇴적물이 가라앉아있어 청록빛의 맑은 물을 볼 수 있었고, 일정 지점에선 푸른 물과 누런 흙탕물이 만나는 청황교차(青黄交差) 풍경도 만났습니다.
물길에서 나와 걸으면 석사자 조각상이 인상적인 병령사 석굴들이 이어집니다. 전날의 맥적산과 또 다른 모습의 불상과 석굴을 보면서,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난주 서역으로 가서 열차를 탄 뒤 가욕관으로 향했습니다. 저녁으로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호텔로 이동하여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넷째 날 아침 찾은 가욕관은 명나라 만리장성의 서쪽 끝을 지키던 관문입니다. 내성을 지난 외성까지 성루를 올라서서 걸어가다 보면 한쪽에는 중국 내륙이, 다른 쪽에는 서역으로 향하는 광활한 땅이 펼쳐집니다. 과거 이 길을 오가던 상인과 여행자들이 통행증을 확인받으며 지나갔던 경계에 직접 서보았습니다.
가욕관을 뒤로하고 약 370km를 이동해 도착한 곳은 돈황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명사산과 월아천을 찾았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언덕과 낙타 행렬 사이를 지나자, 사막 한가운데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 월아천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메마른 사막과 푸른 물이 한 풍경 안에 놓인 모습은 오랜 시간 이 길을 건넜던 사람들에게 오아시스가 어떤 의미였을지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전날 사막과 오아시스를 만났다면 이날은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던 종교와 예술의 흔적을 찾아갔습니다. 오전에는 고즈넉한 뇌음사를 둘러본 뒤 이번 기행의 주요 답사지 가운데 하나인 돈황 막고굴로 향했습니다.
명사산 동쪽 절벽에 조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석굴 사원군인 막고굴은 약 천 년에 걸쳐 수많은 시대와 사람들이 남긴 거대한 불교문화유산입니다. 석굴들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불상과 의복, 색채와 회화 양식이 남아 있으며, 벽화에는 불교 이야기뿐 아니라 음악과 무용, 건축과 의복, 농사와 여행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까지 담겨 있습니다.
투르판에서의 하루는 쿠무타크 사막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거대한 모래사구를 올라 일출을 기다렸습니다. 흐린 날씨 때문에 떠오르는 해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구 정상에서 바라본 끝없는 모래바다는 실크로드의 여정을 몸으로 상상하게 했습니다.
이어 화염산 협곡의 베제클리크 천불동과 고창고성을 찾았습니다. 사라진 벽화의 흔적이 남은 천불동과,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음을 보여주는 고창고성의 흙벽은 실크로드의 1,400년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날 마지막 답사지는 카레즈였습니다. 톈산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은 물을 지하수로를 통해 마을과 포도밭까지 끌어오는 카레즈는 극도로 건조한 투르판에서 사람들이 도시와 농경지를 만들어낸 지혜의 결과였습니다. 하루 동안 아침에 만난 거대한 사막과 저녁에 만 지하 물길은 오아시스 문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보여주는 흐름이었습니다.
우루무치에서는 지금까지 지나온 중국 내륙과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났습니다. 거리의 건물과 상점, 음식과 사람들의 모습에서중국과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가 서로 만나는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천산천지를 찾았습니다. 며칠 동안 돈황과 투르판의 사막을 지나온 뒤 만난 만년설과 푸른 침엽수림, 맑은 호수의 풍경은 전혀 다른 세계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오후에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고대 미라와 직물, 실크로드의 여러 유물을 통해 투르판과 타림분지, 누란 등 지금까지 지나온 장소들이 지도 속 이름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살아온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저녁에는 국제대바자르를 찾아 짧게나마 우루무치의 또 다른 분위기를 느껴보았습니다.
지도 위에서는 하나의 긴 선처럼 보이지만, 직접 따라가 본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황하를 따라 난 물길이 있었고, 절벽에 석굴을 파며 이어온 신앙의 길이 있었습니다. 사막을 건너 오아시스와 도시를 이어온 상인들의 길이 있었고, 카레즈처럼 땅 아래로 물을 끌어오며 삶을 이어온 길도 있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상인과 승려, 여행자들이 이동하면서 물건뿐 아니라 종교와 언어, 음악과 미술, 기술과 생활문화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오래된 교역로 위로 고속열차와 새로운 도시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길의 의미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희망래일이 ‘길’에 주목해온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길이 열리면 사람이 만나고, 사람이 만나면 서로를 이해할 기회가 생깁니다. 이번 실크로드 인문기행은 오래된 유적을 찾아가는 여행인 동시에, 오늘 우리는 어떤 길을 다시 이어갈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먼 길을 떠났을까. 서로 다른 세계는 어떻게 만나왔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길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