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침목 기증운동

2002년 재일동포사회는 남과 북에 각각 2km 의 철길을 깔았습니다.

작성일 2015-02-17 첨부파일
남북에 DMZ 철도연결 성금 전달
“재일동포사회는 남북 화해 원해”
남북을 연결한 경의선 비무장지대 철길 4㎞를 까는 데 필요한 돈을 모금해 남과 북 당국에 전달했던 도상태 일본 비영리법인(NPO) ‘삼천리철도' 이사장은 재일동포의 ‘애족’하는 마음이 레일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도 이사장은 “애국이라는 말은 권력을 연상시켜 좋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말 속에 그의 철학이 오롯이 녹아 있다. 25일 밤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강종헌 한국문제연구소장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도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1인칭 구술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2000년 6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맞잡은 두 손을 치켜들며 6·15 남북공동선언 합의사실을 발표할 때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기대 이상이었지만 흥분하진 않았다. 차분하게 감격했다. 나는 1941년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2세다. 일본 고속도로 교통안전시설의 개발과 제조·공사를 하는 지(G)테크노의 대표이사다. (정상회담 직후 열린 1차 장관급회담) 남북 합의에 경의선 철도 연결이 들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남북 철길 잇기에 도움이 될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렸다. 나는 1965년 신슈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뒤 45년간 기술자로 살아왔다. 기술자에게 ‘구체적 발상’은 본능이다. 이념논쟁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상도 통일도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 2000년 9월1일 민단과 총련계 동포는 물론 일본인들도 함께 참여해 ‘삼천리철도’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두 동강 난 철도를 잇겠다’는 뜻을 담았다.
■ 2001년 3월1일 ‘비무장지대 철도를 우리 손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한 일본 여성은 부친의 법요식을 치르려고 모은 50만엔을 내놓았다. 북쪽에서 교사 노릇을 한 부친이 일제 패망 뒤 조선인 제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해, 이를 보답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 노인은 100번 이상 모금에 참여했고, 한 동포는 100만엔을 송금해줬다. 자기 희수잔치 축의금을 보내준 분도 있다. 그렇게 1년 만에 1360만엔을 모았다. 2001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를 해왔다. 지금껏 5000만엔 이상을 모아 여러 남북화해협력사업에 썼다.
■ 2002년 3월20일 서울을 방문해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680만엔을, 그해 12월엔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에 680만엔을 전달했다. 남북철도 연결공사 중 군사분계선 이남과 이북의 비무장지대 2㎞ 구간의 레일 값으로 각각 써달라고 부탁했다. 비무장지대 경의선 철길 4㎞에는 삼천리철도와 재일동포의 ‘애족’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 2009년 11월13일 임동원·정세현·이재정 세 전 통일부 장관의 초청으로 방한해 도라산역에 갔을 때 침목에 ‘화이부동(和而不同) 평화통일’이라고 썼다. 남과 북 양 정부는 지금껏 재일동포를 종속변수로 대하며 ‘우리와 하나가 되라’고 선택을 강요해왔다. 나는 그런 강요된 선택을 거부한다. 한국엔 남남갈등이 있지만, 재일동포 사회엔 남남, 남북, 북북, 한-일 갈등이 다 있다. 근본원인은 한반도의 분단이다. 나는 재일동포로서 남과 북을 등거리로 보되 결코 멀리 떨어지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게 6·15공동선언의 정신이라 믿는다. 재일동포들이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 해외동포가 겨레의 평화·통일을 위한 상수로서 보편성을 유지하려면 그때그때 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정신적 거처가 있어야 한다. 분단이 계속되는 한 비무장지대 언저리가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삼천리철도는 300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있는데, 상황이 좋아지면 남과 북 양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개성이나 금강산에 양돈단지를 건설해 북쪽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보고 싶다. 많은 재일동포 1세들처럼 내 어머니도 돼지를 길러 우리 4남1녀를 키우셨다. ‘돼지새끼 한마리’에 내 삶이 축약돼 있다. 지금 남북관계가 나빠져 경의선 열차가 다니지 못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철길은 이미 이어놓았으니 철마가 다시 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우리말(한국어)을 알아듣기는 하는데 말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어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화이부동 평화통일’의 정신을 소중히 간직하며 힘 닿는 데까지 배우고 실천하겠다.
 
2010.5.26. 한겨레신문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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